[사회][인문] - Humanities20 죄와 벌 죄와 벌 "알아 소냐?" 그는 갑자기 어떤 감정에 휩싸여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 만일 내가 배가 고팠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도끼로 죽였다면," 그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수수께끼라도 풀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지금... 행복할 거야! 이것 만은 알아 줘!"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 읽을 만한 신작이 없어 고전으로 넘어가, 어째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라스꼴리니코프의 이야기가 떠올라, 그의 방황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라스꼴리니코프라는 한 젊은 청년이 본인의 사상에 심취해 있을 때 마침 술취한 장교와의 설전이 방아쇠가 되어 도끼로 전당포의 노파와 그 .. 2020. 3. 2. 이세계물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꽤 오래 전부터 이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장르문학이 꽤나 많아졌다. 신작 리스트를 살펴보면서 그렇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는데, 사실 더 넓게 보면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까지 이제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가 이야기를 진행하는 작품들이 하루 하루 새롭게 출시되고 있다. 이렇게 이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느덧 유행처럼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현실이 다들 지루하긴 한가보구나──, 하고는 새삼 느끼게 된다. 이세계물의 시작을 살펴보면 보통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시작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이계에서 소환을 한다거나(그것도 어딘가에서 엉켜버린 잘못된 소환), 어딘가에 설치된 부비트랩을 우연히 건드리는 바람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우연에 의해 이세계의 .. 2020. 3. 2. 명상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억하기로는 이게 두 번째 재독인 것 같은데, 이번 출장 이후 자가격리 기간을 갖는 중 시간의 대부분을 독서에 할애하고 있다. 일어나서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펼 수 있는 게 얼마만인지. 계속 일 때문이라는 핑계로 미뤄놨던 독서와 블로그 관리, 그 밖에 할 일들을 마침 처리할 수 있어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담은 여기까지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어느 연령층에서든 필독서 목록에 항상 오르는 책으로,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타인의 사색에 대해 같이 대입해서 고민해보는 경험은 아무 책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색을 적어놓은 책은 많지만 보통은 읽다보면 점점 쓸데없는 넋두리 정도로 여겨지게 되는데, 아우렐리우스의 명.. 2020. 2. 27. [DIARY] 20.02.27 안녕하세요. 티스토리에 일상을 남기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제 플랫폼을 하나 더 가져가려 하니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 되는 것 같아, 당분간은 양쪽을 운영하다가 여기가 안정되면 이사를 할지 양쪽 모두 가져갈지 결정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일상 포스팅이 굉장히 오래된 터라, 폰에 사진도 잔뜩 쌓여서 어디서부터 끊고 올릴지 고민하다가 대충 올해 1월 정도부터 몇 장 가져왔습니다. 작년 말부터 시작해서 퇴근하면 카페든 독서실이든 시간 관계없이 들러 책을 다시 펴기 시작했습니다. 이래저래 예전만큼 집중할 수도 없고 퇴근도 맨날 늦으니 긴 시간 공부할 수도 없지만 조금씩 해나가는 수밖에요. 그래도 1월 초에는 휴가차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목적은 단 하나, 방어회를 먹으러요. 날씨는 좀 흐렸는데, 그래도 목적.. 2020. 2. 27. 빈 수레가 요란하다 창의, 혁신, 융합──. 정말 좋은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디서든 중요하다고 외치는 단어지만, 이제는 어떤 사기와 기만을 행하기 전에 사용되는 포석 정도의 의미 이상은 없는 것 같아, 단어가 오염되었다는 건 이런 걸 말함인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종류의 단어들을 듣게 되면 복잡한 심경이 되는데, 요즘은 이 단어들이 너무 분별없이 남발되는 바람에 더이상 단어로써 아무런 힘도 가치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 분명 그 자체로써는 굉장한 단어임에도 이제는 이 단어들을 듣는 순간 "아──, 또 그 타령이야?" 라고 질려버린 표정으로 조소하게 되었다. 더 이상 말로써의 힘을 갖지 못하게 된 이 단어들은 이제 이 곳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건 물.. 2020. 2. 25. 큐비즘 하루는 추위가 조금 수그러들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아니나 다를까 함박눈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왠지 올 겨울의 마지막 눈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출근길에 오랜만에 우산을 펴고 아직 아무도 지나지 않은 눈길 위를 서걱서걱 걷는 상쾌한 느낌을 만끽했다. 높은 연구소 빌딩 사이로 새하얀 함박눈이 천천히, 그리고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을 보며 왠지모를 생소한 여유로움에,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른 세상의 선명한 경계선 위를 걷고있는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적인 온도의 간극을 새삼 실감하게 되버려 밀려 올라오는 씁쓸한 기분에 조금 더 가까운 걸까. 넓은 회사 로비의 커다란 회전문으로 들어서며 오늘은 어떤 일을 해야할지, 올라가면 어떤 일부터 처리를 해야할지, 자리에 도착하기도 .. 2020. 1. 3. 두 가지 관점 "자동차 경주를 하는데, 헬멧과 안전복, 안전벨트가 없다면 어떤 선수가 과감한 플레이를 할 수 있을까? 사고가 나도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어야 선수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자마자 정말 말도 안되는 핑계라고 생각했다. 선수가 자차를 갖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경주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 피고용의 관계가 얽혀있다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지 말지를 선택권으로 준다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음식이 풍족한데 누가 자발적으로 사냥을 하려고 하겠나. 배부른 맹수보단 굶주린 맹수가 사냥에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하물며 인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헬멧과 안전복, 안전벨트 같은 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한 후에 받는 대우이지 결코 기량 발휘를 약속하.. 2020. 1. 3. 행복, 그 부질없는 단어와 달콤한 허상에 대하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 공항에 내렸을 무렵부터 돌아오는 내내 비가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택시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살짝 들떠있었다. 겨울비를 보는 게 오랜만이어서 그랬던 걸까. 차갑고 건조한 공기 속에 촉촉히 떨어지는 물방울이 어쩌면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좀처럼 한파가 오지 않는 베트남의 겨울과는 달리, 한국의 겨울은 굉장히 쌀쌀했지만 내겐 이게 익숙하다. 택시를 타고 무심코 한숨이 나왔는데,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한기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저마다의 입김이 하얗게 번지는 걸 보고 있자면, 겨울이라는 계절은 여타 계절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새삼스레 호흡이라는 걸 의식하게 하는 계절이랄까, 출국할 때만 해도 .. 2020. 1. 3. 모처럼의 휴가 정신없이 바쁜 시기가 지나고, 연초에 아무 생각없이 일단 정해 두었던 휴가가 다가온 것을 휴가 바로 직전에 알람 메일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눈이 녹기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해 계획을 세우며 이렇다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아 나중에 생각하기로 미뤄두고 한여름 요맘때에는 어딘가 놀러 갈지도 모르니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로 휴가를 마주하게 되니 꽤나 당황스럽더군요. 그렇다고 무언가 계획이 세워질 때까지 휴가를 미루고 싶지는 않아서, 일단은 하루 쉬면서 남은 며칠 간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도 나도 다들 설레는 표정을 하고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걸 보며, 혼자 남아서 일하고 싶은 기분이 들.. 2019. 8. 17. 여자들의 등산일기 "산은 생각을 하기에 딱 좋다. 동행이 있어도 말없이 한 줄로 걷고 있으면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때 마음 속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 떠오른다. 자기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만 한다고, 일상생활에서는 외면하던 문제와 똑바로 마주봐야할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발로 정상에 도착하면 가슴속에도 빛이 비쳐드는 것 아닐까 하는 기대가 가는 길을 격려해준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과 마주 보면서 걷는 것이 등산이라 생각했다." 고백이라는 작품 이후로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여름, 더위를 피해 무작정 백화점으로 들어가 지하의 서점을 둘러보던 중에 발견한 그녀의 신작 소설, 여자들의 등산 일기. 고백이라는 작품의 임팩트가 강해서였을까, .. 2019. 7. 15. 이전 1 2 다음